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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교훈.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따르면, 우린 친숙한 사물엔 주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무의식중에 흘러가버리는 ‘죽은’ 사물이다. 죽은 사물을 ‘되살릴’ 수는 없을까?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이 그걸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술은 사물의 참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망각된 존재를 일깨워준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도 예술로 죽은 사물을 부활시키려 했다. 하지만 거기엔 어떤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낯설게 하기(остранение)! 사물을 낯설게 만들 때 비로소 우리는 거기에 주목하게 된다. 이때 죽었던 사물들은 찬란하게 부활한다. 그냥 보고 지나쳤던 사물들이 실은 얼마나 오묘하고 신비한 존재인가!
예술가들은 본능적 욕구가 매우 강한 사람들로, 대개 신경증에 가까운 내향적 소질을 갖고 있다. 세잔도 그랬고, 고흐도 그랬다. 그들은 명예, 권력, 부귀와 여자의 사랑을 얻으려 하나, 현실에선 그걸 실현할 수가 없다. 이때 그들은 공상을 통해 그 바람을 이루려 한다.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 이루지 못한 욕망을 ‘승화’시킬 때 예술이 탄생한다.
〈샘〉이 다른 변기들과 달리 예술 작품인 까닭은 무엇인가? 그건 예술계가 〈샘〉에만 특별히 예술 작품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사실 세상에 있는 어떤 물건도 예술계가 거기에 자격을 부여하면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 예술계가 자격을 부여하자 변기까지도 예술이 되었다
의도적인 무질서, 대상성의 파괴, 오브제의 도입, 창작의 우연성 등 모더니즘 예술은 전통적 예술 관념에 따르면 도저히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전통적 예술 관념을 깨는 게 오히려 모더니즘의 본질이었으니까.
여기서 만약 ‘예술은 이런 거다’ 하고 정의함으로써 예술의 개념을 닫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모더니즘처럼 새로운 예술 작품이 나타났을 때 이를 무시하고 억압하게 될 거다. 실제로 모더니즘 예술은 당시 대중의 몰이해와 비평가의 비난에 얼마나 시달려야 했던가
작품의 의미는 시대마다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다. 예술 작품은 완제품이 아니다.
화가의 길을 선택한 후 렘브란트가 어떻게 살았는지 난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별로 행복하게 살진 못한 것 같다. 그가 죽으면서 남긴 건 붓 몇 자루였다고 하니까. 그가 자신의 예술을 찾아 나아갈수록 대중은 더욱더 그를 외면했다. 그는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한 천재 화가였다. 이 점에서 그는 최초의 ‘불행한’ 자본주의 화가이기도 했다.
대지는 모든 밝힘을 거부한다. 돌을 저울에 달아보라. 추상적인 숫자 속에 돌의 육중함이 사라질 거다. 색채를 파동수로 분해해보라. 색채 자체는 없어진다. 음향을 진동수로 분해해보라. 음향은 울려퍼지기를 그친다. 대지는 모든 해명을 거부한다. 대지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건 대지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보존될 때뿐이다.
예술 작품은 한갓 사물이다. 고흐의 그림은 한 조각의 아마포에 화학 물질(물감)을 발라놓은 거다. 그럼에도 이 물질 덩어리는 다른 것을 말한다(allo agoreuei). 그러므로 작품은 알레고리(Allegoris), 즉 비유다. 작품은 사물적인 것을 넘어서 다른 어떤 것을 표현하고, 다른 세계를 열어준다.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라네. 만약 진리가 다수결로 결정된다면, 중세 땐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