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 Author
    김동조
  • Published year
    2012
  • Category
    Fi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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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Highlights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야! 내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이다.”
“예술에서든 인생에서든 자기 느낌에 확신이 선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증명할 건 하나도 없어요. 나는 그냥 ‘나’이면 그만입니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
충고는 누구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남의 말을 우습게 알고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으며 저 잘난 맛에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설픈 충고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정말 충고가 필요해 보이는 사람은 오히려 충고를 멀리하려는 경우가 많다. “꿀도 약이라면 쓰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한비자는 왕에게 직언하는 것은 역린(逆鱗) 즉 용의 턱 밑에 거슬러 난 비늘을 만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그 방식이 잘못되면 효과가 없고, 상하 관계라면 다치거나 자칫 죽을 수 있으며, 수평 관계라면 감정이 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는 어떻게 망쳤나, 어제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서 오늘은 어떻게 해야 하나, 스스로 물어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입니다.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관용 말고 또 꼽아보라면?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불굴’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절대로! 삶은 뜀박질이 아니라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입니다. 매우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것입니다. 맨 손톱으로 절벽을 부여잡고 간신히 버티면서 올라가는데, 웬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립니다. 중간에 떨어져 나간 사람들의 소리입니다. 가장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자입니다! 결승 테이프를 누가 끊느냐의 문제도 아니고, 《보이스 오운 Boy’s Own》 잡지류의 모험담도 아닙니다. 자신의 원칙과 결단과 꿈으로 버티고, 참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일찍 포기합니다. 인생에서 실패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아는 만큼 큽니다. 실패는 모르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꼭 실패를 해봐야 합니다. 실패란 내 안의 천재적 재능을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내가 못 가본 처녀지로 과감히 내보내는 일입니다. 물론 넘어지겠지요. 당연히 넘어집니다. 그래도 그것이 내 길입니다. 그 길 끝에서 뭔가를 배울 것입니다.” — 브라이스 코트나이, 《위즈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의 대부분은 지루한 시간을 버텨낸 뒤에야 비로소 ‘퀀텀 점프Quantum Jump’한다. 그 도약 직전까지의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지 않으면, 비약적인 발전이란 것은 없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인간 세상의 많은 비극은 바로 그 ‘퀀텀 점프’를 이루기 직전, 너무 지쳐서 포기하는 바람에 싹튼다."
학생들의 지능과 학업 성적은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능과 학업 성적보다는 성실성이라는 인성적 특성이 사회적 행위와 관련해 훨씬 더 높은 예측력을 보일 수 있다는 게 헤크만의 주장이다. 즉 건강, 10대 임신, 졸업 여부, 임금, 범죄, 고용 따위를 설명하는 데 지능과 학업 성적보다 성실성이 더 유용하다. 헤크만은 이런 인성적 특성을 ‘소프트 스킬Soft Skill’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런 소프트 스킬이 사회적 성취에 아주 중요하며 사회적 차별을 줄이기 위한 교육에서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가 실시한 여러 리서치를 보면 높은 임금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인성적 특성이고, 그다음이 학력 평가 점수이며, 가장 상관이 없는 것이 지능이었다.
아이의 성적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대부분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하고 있고, 영향을 주지 않는 요인은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일을 묘사하고 있다. 즉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건강한 부모의 아이는 자녀를 어떤 방식으로 키우거나 상관없이 학교 성적이 높은 경향이 있다
“지금 특목고, SKY대 졸업하면 별 볼 일 있나요? 이 아이들이 애를 낳으면 교육에 투자하지 않아요. 스스로 생각해도 별 볼 일 없거든요. 미래 사회는 오히려 개인의 창의성, 변화 감지력, 부모 재산 이런 것이 변수가 되겠죠. 그럼 대학은 중요도가 떨어지죠.” — 손주은, 2009년 5월 박경철과의 인터뷰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없습니다. 생각이 모자랐어요. 이젠 신자유주의 시대 아닙니까? 취업 공부, 고시 공부에 목매는 건 두렵기 때문이에요.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다, 안전망이라도 찾자는 거죠. 양극화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일 뿐입니다. 공부해서 취업한들 대기업 부속품밖에 더 됩니까. 얄팍한 인생밖에 더 됩니까. 이제 공부는 구원이 아니라, 기득권층 뒷다리만 잡고 편하게 살자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마르크스 혁명론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기술적 변화, 기술적 혁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잡스가 보여주었던 변화, 남들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창의성, 이것이 미래 경쟁력이 아닌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 손주은, 2011년 11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
경제학에는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라는 것이 있다. 기회비용 그리고 생산성과 함께 이해하기 퍽 어려운 개념으로, 흔히 오해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미 공장을 짓는 데 많은 돈을 들였지만 수익이 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면, 지금까지 돈이나 에너지를 얼마나 썼건 그 사업은 정리하는 게 옳다. 이런 상황에서 그때까지 들어간 돈은 매몰된 비용이기 때문에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1995년 손정의는 컴덱스를 인수하기 위해서 셀던 아델슨Sheldon G. Adelson 회장을 만났다. 기업 인수를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대상 기업의 가치 평가다. 기업을 인수하려는 쪽에서는 아무리 많은 보고서를 읽고 치밀한 분석을 해도 한계가 있다. 기업의 가치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쪽에서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손정의는 아델슨 회장을 만나서 “받고 싶은 가격을 딱 한 번만 말하되, 그 가격이 적정하지 않으면 나는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델슨 회장은 고민 끝에 8억 달러를 제시했고, 손정의는 컴덱스를 인수했다. 손정의가 속으로 생각했던 적정 가격은 8억 5천만 달러였다. 만약 손정의가 아델슨에게 이것이 유일한 기회라는 확신을 주는 데 성공했다면, 손정의는 적정한 가격으로 컴덱스를 인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이 자신의 후생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를 할 때 국가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근거는 도덕적 확신 말고는 달리 찾기 어렵다.
여성이 낙태를 할지 아이를 낳을지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보는 진보주의자들도 낙태가 윤리적으로 옳은 행동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낙태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실제 현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윤리적 선을 가장한 무지나 위선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마약과 성매매 문제는 경제학에서 사회적 관념과 충돌하는 전형적인 주제다. 경제학자들은 마약과 성매매를 합법화할수록 구성원의 경제적 효용이 높아지며 부작용을 통제하기 쉽다고 믿는다. 그 세부 내용을 보면, 마약과 성매매는 성격이 좀 다르다. 마약과 성매매 모두 그것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개인들의 효용은 서로 높아질 뿐 감소하지 않지만, 마약의 경우는 거래 상대방의 효용은 증가할지 몰라도 사회 전체의 효용은 감소할 수 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면 다른 국가와 경쟁해야 하는 국가의 존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의 생산성 증가를 위해서 개인이 자신의 효용을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인간은 스스로 삶을 결정할 자유가 있으므로, 설령 그것이 자기 파괴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국가가 직접 대상을 징벌해서 다른 사람의 후생을 증가시킬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라면 공부하지 않는 학생을 감옥에 넣거나 취미 생활이 지나친 회사원에게 벌금을 물리는 행동도 합리화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국가나 조직이 인재를 키우고 있어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 2007년 미국은 오바마를 선택했고, 1997년 한국은 김대중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몇 세기 동안 바랄 수 없어 보이던 흑인 대통령이 나온 것, 한국에서 대권 도전 4수의 전라도 출신 대통령이 나온 것은 ‘금융 위기’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1971년 노벨상을 받은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자인 사이먼 쿠즈네츠Simon S. Kuznets는 전후 미국 사회에서 소득 분배가 대공황 이전보다 훨씬 평등해졌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객관적인 시장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정치로 인한 것이었다. 평등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질수록, 평등화는 시장의 힘에 의한 점진적 반응이 아니라 정치적 힘의 균형이 급작스럽게 변화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부자들의 소득이 급감한 이유는 높아진 세금 때문이었다. 투자 자본에 높은 세금이 부과되었고, 소득에 대한 세율은 누진적으로 높게 적용되었다. 크루그먼의 표현에 따르면 뉴딜 정책은 부자들의 “소득 상당 부분, 어쩌면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거두어 갔다”.
그러나 살인이 아닌 범죄에 대해서 사형을 실행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엄청난 부작용을 낳기 쉽다. 이렇게 되면 살인까지 가지 않았을 범죄자도 들키고 잡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죽일 인센티브가 커지기 때문이다.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정책 수립에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대중의 여론에 휩쓸려 잘못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다. 제임스 헤크만James Heckman의 말처럼, 나쁜 인센티브는 없느니만 못하다. 우리 근대사를 보면 정권이 정치범에게 사법 살인을 저지른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식의 사형 집행은 사실상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과 다를 바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다.
“대략 230만 명의 미국인이 감옥에 있다.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둔다. 미국의 1인당 수감 비율은 캐나다의 6배, 프랑스의 8배, 일본의 12배이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악명 높은 러시아나 벨라루스보다도 40퍼센트는 더 높다. 230만 명이란 수는 미국 전체 인구 1퍼센트의 3분의 2 정도밖에 안 되지만,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수감된 사람들의 50퍼센트는 한 부류다. 가난한 젊은 흑인. 미국에서 흑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3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흑인 수감률은 백인의 8배나 된다. 백인과 흑인은 불평등하다. 고용률은 2 대 1, 비혼 출산율은 3 대 1, 영아 사망률은 2 대 1, 자산 규모는 5 대 1로 불평등하다. 그러나 수감률에 비할 바는 못 된다.” — 데이비드 콜, “우리의 수치스러운 감옥은 개혁될 수 있을까?”
부의 집중보다 대부분의 사람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더 큰 문제는 교육 수준과 기술 수준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다. 최상위 계층으로 부가 편중되는 것을 해소함으로써 얻는 개인의 편익은 크게 와 닿지 않는 반면, 교육과 기술 수준에 따른 불평등이 확대될 경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때 체감하는 소득 수준의 하락은 클 뿐 아니라 즉각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 소득세에서 누진 성격을 강화하거나 저소득층의 복지 혜택을 늘리는 정책은 세금을 높여 사회의 총 후생은 감소시키고 정치적인 긴장감을 높이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 심각한 사회 이슈가 되기 전까지는 보수주의자들의 양보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높은 생산성을 지향하면 할수록, 경제의 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결국 인적 자본 투자의 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 계층의 교육 기회가 낮아지면 소득 격차는 결코 줄어들 수 없다. 소득 불평등 문제를 풀어가는 근원적인 정책으로서 앞으로 교육 정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국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의 개혁 정책이 의료보험과 금융 개혁을 넘어 교육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