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 인간의 일

  • Author
    구본권
  • Published year
    2015
  • Category
    Technology
  • Status
    Read

11 Highlights

무인자동차 기술도 다른 많은 기술처럼 우주개발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은 일찍이 1970년대 이전부터 진행된 나사의 행성탐사 프로젝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달이나 화성, 금성 등에 우주선을 보내 지표면을 탐사하기 위한 연구에 자율주행 기술과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연구자들이 말하는 대로 기술 개발은 가장 쉬운 과제이고 진짜 과제는 사용자 수용성과 윤리적 문제다. 자율주행차에서 드러난 윤리적 딜레마는 도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로봇과 인공지능에 판단을 위임하면서 생겨나는 근본적 문제 상황이기도 하다.
독일 언어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가 말한 대로 “번역가가 충실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원문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번역은 반역이다Traduttori traditori(직역하면 ‘번역하는 사람들은 반역자들이다’라는 의미)”라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속담이 널리 인용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언어마다 고유한 문화에 뿌리를 둔 문법과 표현법이 있어서 단어나 문장을 옮기는 것은 하나의 문화를 또 다른 문화로 옮기는 것이 된다.
“기계 번역의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외국어를 배워야 할 것인가”라는 실용성에 관한 질문은 “인간에게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연결된다. 외국어 번역에서 기능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을 기계가 대신해주는 환경에서 여전히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을 묻는다면 결국은 언어로서 외국어의 특성을 생각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계 번역의 역사 초기에는 낙관적 기대가 압도적이었다. 1954년 조지타운 대학과 IBM이 60개의 러시아어 문장을 영어로 자동 번역하는 실험에 성공하자 기계 번역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와 투자가 이뤄졌다. 당시엔 3~5년이면 기계 번역이 완성될 것이라고 예상됐다. 최근 몇 년간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최고 성능의 컴퓨터조차 아직 사람의 언어능력을 따라잡지 못한 채 미묘한 상황에서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내놓는다.
로봇이 직면한, ‘쉬운 문제는 어렵고 어려운 문제는 쉬운’ 현상이다. 미국의 로봇과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이 주장한 이 현상은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로 불린다. 컴퓨터가 고도의 논리적 작업을 위해 수행하는 계산량은 얼마 안 되지만 운동이나 감각 능력에는 엄청난 계산 능력과 제어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라벡은 이런 역설적 현상을 인류의 기나긴 진화 과정으로 설명한다. 걷거나 말하는 등의 기능은 인류가 오랜 진화 과정 끝에 최적화한 기능이지만 논리 능력 같은 인지기능은 상대적으로 나중에 학습한 기능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기능을 분석해서 재구성하는 일종의 역설계 reverse engineering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오랜 시간에 거쳐 본능화한 걷기, 말하기 같은 기능일수록 역설계가 어렵다는 것이 모라벡의 주장이다.
온라인 교육업체 코세라Coursera의 공동 창업자인 대프니 콜러 박사는 “300년 전의 교사를 잠재웠다가 오늘날의 강의실에서 눈뜨게 하면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겠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기술은 결국 그동안 해당 업무를 수행해온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운명을 지닌 채 태어난다.
왜 사람에게 일자리가 필요한지는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1759년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노동을 하면 우리는 세 가지 악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 그 세 가지 악이란 바로 권태, 방탕, 궁핍이라오.”
빅데이터는 이유를 알지 못해도 인과 법칙과 유사한 수준의 정확도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구글이 사용자들의 독감 관련 검색을 활용해 만들어낸 독감 유행 경보 서비스인 플루 트렌드Flu Trend는 높은 정확도를 보여주었다. 빅데이터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인과성을 밝혀낼 필요가 없도록 해준다. 이유를 알지 못해도 빅데이터를 통한 상관분석만으로 충분히 유용한 결론에 이를 수 있게 해준다. 마이어쇤베르거는 빅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분석 방법은 그동안 보이지 않던 연결 관계를 보여준다면서, 비인과적 분석 덕분에 ‘이유’가 아닌, ‘결론’을 묻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똑똑한 컴퓨터가 사람 같은 호기심을 가질 수 없는 까닭은 호기심이 인간 고유의 심리 작동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지적 결핍이자 인지적 불만족의 한 형태다. 하지만 호기심은 가장 행복한 결핍이자 불만족이다. 호기심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겨나는 궁금증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사이에서 설명되지 않는 인지적 빈틈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또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