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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발생하는 데 분명 탐욕이 큰 역할을 했지만 무언가 더욱 큰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변화는 탐욕의 증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시장과 시장가치가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영역으로 팽창한 것이다.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다. 시장이 단순히 재화를 분배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교환되는 재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드러내면서 부추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 책을 읽게 하는 행위는, 아이들을 독서에 힘쓰게 만들지는 모르나 독서를 내재적 만족의 원천이 아니라 일종의 노동으로 여기도록 한다. 대학의 입학허가를 경매에 부쳐 최고 입찰자에게 파는 행위는 대학 재정에 보탬이 될지는 모르나 대학의 품위와 대학입학의 가치를 해칠 수 있다. 자국의 전쟁에 외국인 용병을 투입하는 행위는 자국민의 생명을 구할지는 모르나 시민정신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은 상품화하면 변질되거나 저평가된다. 시장에 속한 영역이 무엇인지, 시장과 거리를 두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 판단하려면, 해당 재화, 즉 건강·교육·가정생활·자연·예술·시민의 의무와 같은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도덕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례별로 이러한 재화의 도덕적 의미와 재화 가치의 적절한 평가방법에 관해 토론을 벌여야 한다.
학력 미달인 아이에게 돈을 주어 읽기 능력을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면, 배움의 즐거움은 나중에 가르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우선 그렇게 시도해보기로 결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가담한 뇌물 제공은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읽는 높은 차원의 규범을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읽는 낮은 차원의 규범으로 대체하는, 도덕적으로 타협된 관행이라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사람들이 절박할 정도로 가난하거나 공정한 조건으로 거래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시장 선택은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시장 선택이 자유롭게 이루어졌는지 판단하려면 어떤 불평등한 사회 조건이 작용하여 유의미한 동의를 훼손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입양할 아이를 사고파는 시장을 수립할지 말지 결정하려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지배해야 하는 규범이 무엇인지, 아이를 사고파는 행위가 그 규범을 훼손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내재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면 그들의 내재적 흥미나 헌신을 ‘밀어내거나’ 그 가치를 떨어뜨려 동기유발을 약화시킬지 모른다. 일반 경제학 이론은 성질이나 출처에 상관없이 모든 동기를 선호로 해석하고 그것이 모두 부가적이라 추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돈의 잠식 효과를 간과한 것이다.
상업화는 특정 재화를 훼손할 뿐 아니라 공통성을 잠식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각계각층 사람들이 서로 마주칠 기회는 줄어든다. 야구경기장에서 스카이박스를 올려다보면서, 혹은 스카이박스 안에서 내려다보면서 이러한 현상을 목격한다. 과거에 야구경기장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섞여 응원했던 경험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스카이박스를 올려다보는 사람뿐 아니라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에게도 상실(喪失)이다.